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인 하야마 요시키(葉山嘉樹, 1894-1945)의 1926년(다이쇼 15년)작.
관념적, 도식적이던 기존의 프로문학을 탈피하고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을 그려,
프로문학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0년대의 당시 일본의 시대상-
1920년대 중 후반 정치, 사회상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등으로 사회 전반적인 민주화의 추세에 힘입어 1925년 보통선거가 실현되고 정당내각제도도 궤도에 오르지만 치안유지법이 성립하면서 극명한 대립의 시기를 맞는다. 이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사회운동은 무산정당을 출현시켰고 여기에 기성정당은 혹독한 탄압으로 맞섰다. 특히 계급투쟁에 입각한 사회주의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치안유지법을 위시한 당국의 극심한 탄압을 받게 된다.
간단하게 우리나라의 7~80년대의 학생,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를 생각하면 그때의 일본을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시멘트 통 속의 편지(セメント樽の中の手紙)
마쓰도 요조松戸与三는 시멘트를 붓고 있었다. 다른 부분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머리카락과 코 밑은 시멘트로 뽀얗게 뒤덮여 있었다. 그는 콧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철근 콘크리트처럼 코털을 딱딱하게 굳혀 놓은 콘크리트를 후벼 파내고 싶었지만, 1분에 1재才(단위, 10분의 1작勺)씩 토해내는 콘크리트 믹서의 속도에 맞춰 일하려면 도저히 손가락을 콧구멍으로 가져갈 틈이 없었다.
그는 콧구멍에 신경을 쓰면서도 끝내 열한 시간ㅡ그 사이 점심시간과 오후 3시 휴식, 총 두 번의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점심 때는 배가 고파서, 휴식 때는 믹서를 청소하느라 틈이 없어, 결국 코에까지는 손을 올리지 못했다ㅡ 동안 코를 청소하지 못했다. 그의 코는 석고 조형물처럼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가 일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기진맥진한 손으로 들어부은 시멘트 통에서 조그만 나무 상자가 나왔다.
"뭐지?"
그는 약간 의아했지만,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부삽으로 됫박에 시멘트의 양을 가늠해 퍼넣었다. 그리고 통 속에 시멘트를 쏟아 됫박을 비우고 곧장 부삽으로 다시 시멘트를 퍼올렸다.
"아니 잠깐, 시멘트 통에서 상자가 나올 리가 없는데."
그는 조그만 상자를 주워 작업복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상자는 가벼웠다.
"가벼운 걸 보니, 땡전 한 푼도 안 들어 있는 모양이군."
그는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통을 열어, 다음 됫박의 양을 가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믹서가 헛돌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작업이 끝나고 하루 일도 끝나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믹서에 달려 있는 고무 호스에서 나오는 물로 대충 얼굴과 손을 씻었다. 그런 뒤 도시락 주머니를 목에 둘러메고, 오로지 한잔 마실 생각에 빠져 집으로 돌아갔다. 발전소는 80퍼센트 정도 완성되었다. 저녁 어둠 속에 솟아 있는 에나산恵那山은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땀에 쩔은 몸은 금방 얼어붙는 추위를 느끼게 했다. 그가 지나가는 발 밑에서는 기소木會 강이 하얀 거품을 물고서 짖어대고 있었다.
"쳇, 못해 먹겠군. 마누라는 또 배가 남산만하지......" 그는 집에서 오글거리고 있을 아이들이며, 또 이 추위를 무릅쓰고 태어날 아이며, 대책없이 애를 낳아대는 마누라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일당 1엔 90전 중에서 하루에 50전치 쌀 두 되를 먹어치우고, 90전으로 입고 생활하고... 등신아! 마실 돈이 어딨어!"
그러다 문득 그는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떠올렸다. 그는 상자에 붙은 시멘트를 바지 자락으로 비벼 털어냈다.
상자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단단하게 못이 박혀 있었다.
"무슨 꿍꿍이야, 못까지 쾅쾅 박아 놓고."
그는 돌 위에 상자를 집어던졌다. 하지만 부서지질 않았다. 짓뭉개 버리고 싶은 격한 감정이 일어 마구 짓밟았다.
그가 주운 작은 상자 속에서는 헝겊 쪼가리에 싸인 종이가 나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ㅡ저는 N시멘트 회사에서 시멘트 포대 깁는 일을 하는 여공입니다. 저의 애인은 분쇄기에 돌을 집어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10월 7일 아침, 커다란 돌을 집어넣을 때 그 돌과 함께 분쇄기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동료 분들이 구해내려고 했지만, 물 속으로 빠져들듯 돌 아래로 제 애인은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돌과 애인의 몸은 서로 뒤엉켜 부서지며 빨갛고 자잘한 돌이 되어 벨트 위로 떨어졌습니다. 벨트는 분쇄통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동철 탄환과 하나가 되어 잘게 잘게 격렬한 소음과 저주의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부서져 갔습니다. 그리고 불에 태워져 명실상부한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뼈도 살도 혼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제 애인의 모든 것은 시멘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이 넝마같은 작업복 쪼가리 뿐입니다. 저는 애인을 넣을 포대를 깁고 있습니다. 제 애인은 시멘트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이 편지를 써서 이 통 속에 살짝 집어넣었습니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당신이 노동자라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답장을 해 주세요.
이 통 속에 있던 시멘트가 어디에 사용되었을까요? 저는 그걸 알고 싶습니다.
제 애인은 몇 통이나 되는 시멘트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어떤 분들이 그걸 썼을까요?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아니면 건축업자입니까?
저는 제 애인이 극장의 복도가 되고, 큰 저택의 담이 되는 걸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이 시멘트를 그런 곳에는 사용하지 말아 주세요.
아니, 상관없습니다. 아무 데라도 개의치 말고 쓰세요. 저의 애인은 어떤 곳에 묻히더라도, 그 장소에 따라 틀림없이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괜찮아요. 그는 성품이 반듯한 사람이었으니, 분명 성실히 나름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견실하고 남자다웠습니다. 아직 젊었습니다. 막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이에게 흰 수의를 입혀 주는 대신 시멘트 포대를 입히고 있어요! 그 사람은 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회전 가마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가 어떻게 그 사람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동에도 서에도, 가까운 곳에도 먼 곳에도 매장되어 있는 걸요.
당신이 만약 노동자라면, 제게 답장을 주십시오. 그 대신 제 애인이 입고 있던 작업복 쪼가리를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싼 헝겊 쪼가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쪼가리에는 돌가루와 그이의 땀이 배어 있답니다. 그 사람이 이 조각난 작업복을 입고 얼마나 나를 꼭 껴안아 주었던지요.
부탁입니다. 이 시멘트를 사용한 날짜와 정확한 주소, 또 어떤 곳에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당신의 이름도 폐가 되지 않는다면 꼭, 꼭 알려주세요. 당신도 부디 조심하세요. 안녕히.
마쓰도 요조는 끓어오르는 듯이 소란을 피워대는 아이들을 문득 느꼈다.
그는 편지 끄트머리에 적힌 주소와 이름을 보며, 사발에 부어 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취하고 싶구나. 그래서 다 때려 부쉈으면 좋겠어!" 하고 소리쳤다.
"고주망태가 돼서 난리치면 안 되죠, 아이들은 어떻게 해요."
마누라가 그렇게 대꾸했다.
그는 마누라의 커다란 뱃속에 있는 일곱번째 아이를 보았다.